posted by 별진 2019. 4. 26. 01:00

#국화와칼 

#13계단 #스포있습니다

 

일본의 기무, 기리, 온 등은 우리말로 하면 의무, 신세, 은혜 정도가 될꺼다. 한국의 정서와 비슷하지만 많이 다르다.

 

<13계단>을 보면서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이 궁금해져 함께 읽었다. 역시 함께가 아니면 읽기 어려웠을 책이다. 다 읽고나니 <13계단>의 주인공과 그 여자친구, 주변인물들의 사고와 행동이 모두 이해된다. 주인공은 친구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기보다 나의 기리가 훼손되었으므로 이에 대한 복수를 마치 정의실현인 것으로 생각한듯 하다. 이것은 작가의 사상이고, 일본인의 사상이다.

 

'인'이 빠진 유교사상, 절제를 위한 수행, 목숨보다 중요한 기리. 지배층의 필요에 의해 편리하게 각색된 사상들. 작은 일이라도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거기에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 자기절제를 미덕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일본인이다. 그래서 자기 계급에 충실하여 계급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나라가 일본이다. 나보다 그 자리를 중요하게 여기므로 자리에 만족하고 충성하는 반면, 어떤 사상으로 이용하기도 쉽다. 

 

'명예'를 그렇게 중요하게 여긴 일본인들이 어찌 그리 조선을 잔인하게 다루었을까? '나쁘다'보다 '다르다'고 생각한다지만, 나쁘게 바라보고 싶다. 특히, <13계단>에서 주인공이 정의롭게 그려진 것이 '공감'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기리' 즉 자신의 명예에 기반한 것이라 생각하면 어이없다. 

 

그들의 국민성으로는 자신들의 정의가 '전쟁'이라고 여겨진다면, 지배계급이 그렇게 여기도록 한다면, 언제든지 전쟁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일본의 젊은이들은 많이 다르다고 하니 현대판 <국화와 칼>도 있으면 좋겠다. 미국인이 아닌 동양인, 혹은 한국인이 우리 정서와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겠다.

 

2차대전 끝 무렵 '일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의 목적으로 일본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여성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쓴 책이다. 무려 70년전의 책이다. 70년 전 서양과 동양에서의 여성의 지위 차이가 새삼 느껴진다. 

아래 기사는 흥미로워서 적어봅니다.

 

[주간조선 2446호, 2017.02.27]

[물음을 찾아 떠나는 고전 여행] 국화와 칼

 

히로히토는 왜 처벌되지 않았을까?

 

삼일절이다. 또다시 일본을 생각해 본다. 모든 전쟁에서 패전국의 수뇌는 가혹한 처벌을 면치 못하게 마련이다. 2차대전의 원흉인 히틀러나 무솔리니도 자살 또는 타살로 생을 마감했다. 반면 히로히토(裕仁)는 개인적 안전뿐만 아니라 대대손손 영속까지 보장되었다.

 

이처럼 승전국인 미국은 그를 단순한 전범으로 처분하지 않고 ‘특별한’ 존재로 처우했다. 당시 이러한 미국 측 대응과 판단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진 고전이 있다. 바로 루스 베네딕트(1887~1948)의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1946)이다.

 

중략

 

우리는 일본이 진솔한 반성을 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들은 역사와 선조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온’을 망각하고 ‘기리’을 저버리는 짓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 비추어, 위안부 문제만 해도 우리의 대응이 얼마나 어설픈지 알 수 있다. 그것은 섣불리 외교 현안으로 삼을 일이 아니다. 더구나 단숨에 해결할 일은 더더욱 아니다. 단언컨대 지일(知日)이 없으면 극일(克日)도 없다. ‘국화와 칼’이야말로 더없이 좋은 지일 교과서이다.

 

#역사는반복된다니_두렵습니다

#수행은_그런게아냐 #공감하는_한국인

#나쁘다말고_다르다 #머리보다_가슴으로

#용기내어_올려봅니다.

 

ID
posted by 별진 2019. 3. 13. 19:29

#우리는자란다


자려고 눕길래 하고싶은 말이 있어 따라 들어갔다. 
"공부하는 이유"


어제 남편과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사명감'이란 단어에 깨장에서의 벅찬 감동이 떠올랐다. 나에게 다른 삶을 살게 해준 고향이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 단지 먹고살기 위함이 아닌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함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해보자'로 시작했으나 발전으로 인한 빈부격차, 고령화, 저출산부터 무기발명으로 인한 대학살, 히틀러와 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졌다. 단어만 나열해놓으면 그럴싸한 토론를 한 것 같지만 지극히 초딩다운 발상에서 출발한다. 초딩은 오늘 중1 되었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아이 말대로 플라스틱 먹는 미생물 개발이나 썩는 플라스틱 개발처럼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 분리수거 캠페인의 시민운동이나 아예 플라스틱을 규제하는 제도로써 접근할 수도 있다. 문제들을 해결하고 좀 더 나은 더불어 잘사는 세상을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고 이를 위해 우리는 공부한다... 라고 우겨보았다. 이미 세상에 쓴맛을 여러모로 겪었는지 사람들은 발전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공부해서 발전하는것이 유해하다는 것이 아이의 주장이다. 나는 다시, 세상에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아직 살만한 세상인건 분명 다함께 잘살기 위해 애쓰는 좋은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라고 우겼다.


다행히 여기까지 하고 좀 자자고 짜능내줘서 생각이 많구나, 기특하다는 둥, 엄마도 너만할 때 조선시대가 낫다며 너처럼 생각했던거 같다는 둥 토닥이고 나왔다.


이야기한다는 것이 가르치려했으니 이미 시작부터 대화라고 할만한 것이 아니었던걸까. 그저 먹고 살기 위함보다 다른 무언가가 가슴속에 있길 바란다. 어쩌면 자식 공부 잘해서 잘 먹고 잘 살았으면 하는 지극히 저만 생각하는 어미욕심일 것이다. 또 잘 먹고 잘 살되, 이것이 네 마음에 조금이라도 짐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더 커다란 욕심도 있다. 그저 네 한 몸, 사람들속에서 소박하게 살만하고 작은 것에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성질내지 않고 차분히 듣고 토닥여주기까지 한 나를 매우 매우 매우 칭찬한다. 우리는 잘 가고 있다.


#칭찬해칭찬해
#저는겨우텀블러씁니다
#플라스틱쓰레기는_우주적문제에요 
#미세먼지는_태양계문제일까요


ID
posted by 별진 2019. 2. 28. 23:33

#우리는자란다


#1
겨울방학에 가고싶어하던 일본 먹방여행을 엄마랑 둘이 다녀왔다. 아이가 찾은 맛집을 구글맵에 표시해두어서 엄마는 먹을 걱정은 없었다. 마지막날 나라공원에서 공항버스탈때까지 아이는 계속 사슴안고 다니고 나는 옆에서 사진만 찍었다. 예전같으면 짜증 100만배, 성질내기 970만번이었을텐데, '얘는 정말 동물을 사랑하는구나'하고 지켜볼수 있는게 감사했다.


일본은 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여행다니기 좋게 잘 되어있고, 자기들 고유의 문화를 곳곳에 잘 살려놓아 특색있고 보기 좋았다. 우리나라도 이정도 관광객이 오면 먹고 살만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목포 옛건물 사는데 무슨 투기를 생각하겠나, 이렇게 멋지게 살리면 좋겠다, 사명감이나 애정이란 이런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예전에 1박2일 목포여행을 했는데, 그때 목포근대역사관이 참 좋았다. 입구에서 해설가 선생님이 친절하고 간략하게 목포의 역사를 설명해주셔서 더 인상깊었다. '미스터선샤인'에 나올법한 건물이어서 일제강점기 소설책을 보면 이 건물이 생각난다. 초등저학년 아이도 신기해하며 다녔다. 구 시가지 옛건물에는 일제만행을 보여주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차마 아이와 함께 보기 어려운 사진들이 많았다. 전쟁의 참상을, 나는 이 사진들로 인해 현실적으로 상상할수 있게 되었다. 구시가지는 한적했지만 현대건축물과는 다른 옛건물들의 무게감과 세월의 흔적이 아름다웠다. 인천 차이나타운보다 거리는 짧지만 더 '깊은'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오사카성을 구경할때 아이는 손가락엿을 날린다며 불끈쥐고 다녀서 말리느라 애썼다. 우리는 그들 땅에 와있고 그들의 잘잘못을 떠나 예의를 지키자 여러번 설명해야 했다. 여튼 지방도시까지 지하철 잘 되어있고 구 시가지가 살아있으며 새건물들도 관광객이 볼만하니 과연 선진국이구나 한다.


욕심많은 엄마 봐주느라 고생한 아들이 고마운 여행이었다. 너 많이 컸구나. 그런데 이런 배려는 엄마한테만 하고 너를 먼저 생각하렴. ㅋ


#2
겨울방학 어느 날, 그냥 바다가 보고 싶어서 인천으로 달렸다. 둘이서 노을보고 칼국수 한그릇 먹고 왔다. 돌아오는 길에 먼 바다보다 파도치고 바람부는 바다가 더 낫다는데 공감했다.


#3
명절풍경.
일년에 며칠 못보지만 두살터울 사촌동생이랑 내복바람으로 신나게 노는구나. 어미 잔소리는 끝이 없지만 너는 더 못놀아 안달인게 다행이다.


#4
지금 여기.
커피한잔 할 수 있어서 참 좋고,
지인의 따뜻한 문자에 감사하고,
이렇게 방학을 기록할 수 있어 여유롭다.


#겨울방학
#일본과목포 #인천앞바다노을 
#명절에엄마는허리가아프다 #그래도너는놀아라
#지금도자란다


#커피한잔의여유


  #명절에엄마는허리가아프다 #그래도너는놀아라


#하루카스빌딩야경


#인천앞바다노을 


posted by 별진 2019. 1. 8. 23:53

혼자서는 보지 못했을 책이다.지인의 뽐뿌질이 아니었으면 완독하지 못했을 것이다. 완독하지 못했으면 감동도 없었을 것이다.


"그 어느 것도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은 없었다. 그 모든 일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짜여진 운명에 상응하는 것이었으며, 에스테반 가르시아도 그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거칠고 삐뚤어진 부분이었지만, 그 어느 것도 괜히 존재하는 것은 없었다. "


"인생은 너무 짧고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 버려서 우리는 사건들 간의 관계를 제대로 관망하지 못한다고 내가 썼고 , 그녀도 그렇게 썼다. 우리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의 환상을 믿고 있다. "


단어들의 깊이가 우주같이 느껴진다. 수백년을 살아온 단어들의 연륜이 와닿는다. 우리근대사와 비슷한 칠레의 역사를 통해 저마다의 상황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모두 이해가 되는 책이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작가는 삶과 시대를 통찰한듯 하다. 작가들은 모두 천재인가보다. 이분은 거기에 영혼을 더했다.


#영혼의집 #이사벨아옌데
#이것은스포입니다 #연기법입니다 #재미도있어요
#고독을이해하게됩니다 #미국은이해하기어렵습니다
#알수록감동이커집니다 #삶을관망할수있을까요
#방학이라너무좋아요

이미지: 사람 1명, 실내


ID
posted by 별진 2019. 1. 8. 23:52

#1
아들 생일이다. 
어제 저녁엔 먹고싶다는 고기집가서 줄서서 기다린 끝에 셋이 고기 6인분+된장에 밥한공기씩 뚝딱하고, 돌아오는 길에 케잌사서 초를 밝혔다. 불 다끄고 초하나만 켜도 집안은 환해진다. 내 마음에 초하나만 있음 추운 겨울이 따뜻해짐을 자꾸 알게된다.

오늘 아침은 미역국에 좋아하는 잡채를 함께 해먹고, 아들 소원하는 부루마블을 셋이서 했다. 언제나처럼 아빠 완승! 신기하게 같은 전략으로 하는데 늘 남편이 일등이다. 게임이지만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남편이 이겨서 다행이다.

나는 저녁밥을 하고 아빠와 아들은 줄넘기하러 갔다. 매일 500개 하기 미션. 엄마 맘이 가닿았는지 요즘은 엄마가 주는 미션을 투덜대지 않고 해준다. 매일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한다는 의미를 알길 바란다. 입만 움직이는 나보다 아이가 백만배 낫다.


#2
얼마전 아이와 누워 한 이야기.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를 데려다주면 비행기가 반값이라며 눈을 반짝인다. 엄마는 비행기값이 부담되긴 하지만 그렇게 해외여행을 가고 싶진 않다고 이야기해줬다. 입양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원래 없으면 가장 좋은 일이고, 아이를 그렇게 보내는게 맘이 불편할텐데 돈 좀 아끼려고 맘 불편한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 엄마는 신념같은게 생긴거구나~" 
한다.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명치끝이 아린다. 신념까지는 아니지만 지킬 수 있는 작은 가치는 지키며 살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걸 자꾸 알게 된다.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다.


엄마가 하는 생각들이 아이에게 짐이 될까 두려울 때가 있다. 가볍게 살아도 되는 삶이다. 아무때고 무거우면 그냥 내려놓을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한다.


#3
크리스마스에 간 9BLOCK.
9BLOCK 커피는 비싸지만 맛있었고 경치도 좋았다. 내부도 단정하고 멋진 까페였는데 봄, 여름에 오면 더 좋을것 같다. 날이 날이니만큼 연인들이 많아서인지 혹은 내 존재가 뜨내기일 수 밖에 없는 장소여서인지 편안하진 않았다. 빨리 가자고 옆에서 보챈다. 오가는 길에 셋이 좁은 차에 낑겨 탄 것이 추억이 된 하루다.


#4
부암동 라까페.
깊은 초록빛의 까페. 심신이 매우 피로한 상태였는데 이곳의 고요한 기운에 나도 단정해진다. 자꾸만 초대해주는 따뜻한 친구와 함께여서 좋은 날. 담엔 내가 먼저 초대해야지.


#부암동라까페 #박노해갤러리
#9BLOCK #경치가좋아요
#고진감래말고_그냥하기
#무거우면내려놓기
#오늘도_유머는_실패

이미지: 하늘, 실외, 물 자연
이미지: 사람들이 서 있음 실내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이미지: 실외


ID
posted by 별진 2019. 1. 8. 23:50

#1
종종 감정 과잉상태를 겪는다. 
어제는 학교에서, 오늘은 법당에서 그랬다. 사이버상에서도 자주 그런다.

예전에는 진심을 다했을때 그게 돌아오지 않으면 맘이 상했다. 지금은 돌아오건 말건 그냥 진심으로 한다. 가끔 어리석게 보일 때가 있고 감정에 치우친게 아닐까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게 나다. 딴 맘이 있을땐 잘 돌아오지 않더니, 그저 나에게 충실한 것이 나에게 돌아올 때가 있다.


'진심'이란 단어에 '다했다'는 표현을 쓰는건 '진심'은 조금만 쓸수 없어서 소진해서 전부 '다'할 수 밖에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만으로도 맘 따뜻한 인연도 자꾸 생긴다. 함께할 수 있고, 잘 쓰일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연말이다. 나중에 갱년기가 오면 우울보다 감동과잉을 겪지 않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2
지난 주말 아들이 같이 가준 동작 구름까페. 
커피 이천원. 맥주 와인 안주 다양하게 있음. 군고구마는 있지만 사발면은 못봤음. 루프탑 전망 좋음. 다양한 연령의 문학동네 책 다량 구비됨. 담번엔 노을까페로 갈 예정. 한강야경 즐기기.


#3
일상이 소확행.
집에서 따끈한 저녁밥 먹으면서 맛있다, 행복하다 한다. 꼬박꼬박 집에 와 가방던지고 똥싸러 가는 아이가 매일 반갑다. 불끄고 이불덮고 누워있어도 참 좋다.


#동작구름까페 
#포동한손등 #부끄러서손가락은하나만 #포동할때맘껏안아주기

이미지: 밤, 다리, 실외 물
이미지: 실내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ID
posted by 별진 2018. 12. 8. 01:18


나는 버리는것을 잘 못한다. 
물건도 마음도 버리지 못해 집착이 많다. 집안 정리를 하면서 몇가지 물건을 '중고나라' 네이버 까페에서 무료나눔을 했었다. 10년도 더 된 믹서기, 아이 어릴때 쓰던 블럭 장난감, 6년쯤 된 보온압력밥솥, 최근에는 프린터가 고장나 못쓰게 된 무한리필 잉크를 나누었다. 기능엔 이상이 없어서 버리긴 아까웠지만 바꾸고 싶은 물건들, 오래 되었지만 정말 아이가 잘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자취생에겐 유용할 듯한 보온압력밥솥, 버리면 환경오염이지만 나누면 쓸모있을 잉크였다. 
 나는 대학3학년부터 자취를 했다. 원래 성질이 그러했겠지만, 자취하면서 버리고 사는걸 더 잘 못했던 것 같다. 자취생에겐 믹서기도, 보온압력밥솥도 새로 사면 사치일 것만 같은 마음을 알 수 있다. 젊은 여학생이 지하철을 타고 캐리어를 끌고 밥솥을 가지러 왔고, 애기 엄마가 그 큰 장난감통을 혼자 들고 가셨다. 그 외에도 몇가지가 있었는데 모두 우유나 쥬스, 과자 등등 소소한 간식거리를 까만 봉투에 주고 가셨다. 택배로 보낸 물건들에 대해서는 참 고맙다며 꼭 문자인사가 왔다. 받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고, 그저 버리지 못하는 내 성질대로 나누었으나, 그들이 건네준 까만 봉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무주상보시'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로 돌아온다'
주었으나 준 것은 없고, 오히려 받은 것만 남았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하루.

#부암동환기미술관 #아직도예쁜단풍이 #앙상해도운치있는담쟁이 #차갑지만따뜻한돌계단


ID
posted by 별진 2018. 11. 2. 22:52

버거킹에 갔다. 

햄버거세트 3개를 주문해야했는데, 신상품이 출시됐고 제품의 세트구성이 여러개 였으며 자동 주문 터치스크린에는 상품 사진만 있고 설명이 없었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다 기계한테 물어볼 수 없어서 망설이다 주문을 못하고 옆으로 나왔다. 편리하다는 자동 주문기계는 매우 불친절해서 신상품이 어떤 제품인지, 세트메뉴 구성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설명해주지 않았고 나는 마치 석기시대 사람마냥 당황했다. 카운터 직원들은 기계가 쏟아내는 명령을 처리하기 바빠서 붙잡고 물어보기 어려웠다. 이 터치스크린은 세대나 있었는데 사람이 직접 주문 받는것보다 느려서 손님들이 줄을 길게 서있다. 게다가 그 중 한대는 고장나서 두대만 사용할 수 있었다. 사람에게 주문할 때는 필요한 것을 말하면 됐는데, 터치스크린으로 주문하려니 메뉴의 카테고리와 반복적으로 물어보는 사이드메뉴 등을 여러번 눌러줘야 했다.


가끔 맥도날드에서도 똑같은 기계로 커피 한잔을 주문하는데 꽤나 손이 많이가고 오래걸린다. 기계앞에서 결제는 카드로만 가능하고 현금으로 하려면 카운터에서 해야한다. 그런데 막상 카운터로 가면 음식을 만드느라 바빠서 주문받는 직원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편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불편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게 4차산업혁명의 현실인가.


점주나 업체가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임엔 틀림없지만, 일자리가 줄고 손님에게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만약 고급 식당이라면 어땠을까? 저렴한 매장은 점점 기계화되는 반면, 비싼 곳에서는 기계가 손님을 상대하지 않을 듯하다. 빈부격차는 점점 심해질거고 사람을 만나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격차도 더욱 벌어질것 같다. 일자리는 기계가 차지하고, 소득격차는 더 벌어지며, 빈곤한 나는 사람이 아닌 기계가 상대하게 될거다. 멀리 있는 줄 알았던 로봇세와 기본소득 보장의 필요성을 일상에서 체감하는 순간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극히 소수의 엘리트에게 부가 집중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과 인공지능에게 지배당할 것이라 예측한 유투브영상도 생각난다.


오늘 저녁을 이렇게 산 버거킹 햄버거로 대신했는데, 그 이유도 기계에 있다. 집에 있는 샤오미 로봇 청소기가 고장난 프린터를 건드려 잉크가 샜고 거실 마루가 검은 잉크로 난장판이 되었다. 성실한 청소기는 내가 없는 사이, 바퀴에 잉크를 묻힌 채로 온 집안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잉크를 닦다가 진이 빠졌고 아세톤을 사러나온 김에 저녁도 해결하러 간거였다.


로봇 청소기는 내 일자리를 뺏진 않았지만, 사람과 달리 본연의 업무인 먼지청소에만 충실해서 쏟아진 잉크조차 닦을 줄 모른다. 버거킹 터치 스크린은 빠르지도 못하고, 필요한 것을 물어볼 수도 없으며, 고장도 잘난다. 알파고 따위의 인공지능도 아니고 이렇게나 멍청한 기계때문에 간단한 햄버거주문에도 당황하고, 일자리를 빼앗긴다니 마음이 불편하다. 혹시 어디엔가 있을지 모르는 '울트론'의 음모는 아닐까? '러다이트 운동'을 해야하는 건 아닐까?


#4차산업혁명 #울트론의음모 #멍청한로봇 #지금당장_로봇세 #러다이트운동 #기계보다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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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진 2018. 10. 6. 01:44

페북을 보다가 어느 젊은 아빠가 아이들 어린 시절에 6살 아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고 지하철을 타고 장난감 가게까지 다녀온 이야기를 보았다. 인천 지하철에서 자고 있는 아이가 탑승한 채로 유모차를 들고 이동한 이야기, 큰 아이에게 아빠가 산 선물이 아니라 산타할아버지가 준 선물이어야만 했으므로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추운 밖에서 서성인 일 등이 적혀 있다. 

문득 지난날 아이가 누워있는 유모차를 안고 신림동 4층 빌라를 오르내린 기억이 난다. 아이가 누워있거나, 아니면 아이따로 유모차 따로 들고 날랐었다. 장본 날은 장본 물건도 따로였다. 집에 제일 먼저 올려다 놓은 아이가 울까봐 그 높은 계단을 헐레벌떡 뛰어다닌 기억이 있다. 정말 다리가 후들거리고 땀이 뻘뻘 났다. 아이 장난감을 사러 남편이 고군분투한 기억이 나는 없다. 이것이 아이에 대한 나의 과잉사랑 때문일까, 남편의 과잉 무관심 때문일까. 아직도 지난날의 설움이 나는 북받힐때가 있다. 남편의 고된 돈벌이 따위는 내 설움 저 아래에 있다. 

아이가 부산에서 올라온 며칠 후, 장을 보러 아이를 데리고 이마트를 갔었다. 장을 오래봐서 우리는 배가 고팠고, 적당히 때울줄 몰랐던 나는 장본 것들 중에 빵을 하나 뜯어서 아이 손에 쥐어주었다. 배고픈 나머지 나도 한입 베어먹었더니 아이가 화를 내며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있다. 3살때다. 겨우 작은 장바구니 하나되는 짐을 들고 택시를 잡아 집에 왔다. 다시 4층까지 아이를 달래고 안고 짐을 들고 올라갔다. 이미 깜깜한 저녁이었다. 

5살인가 6살때는 둘이 심심해서 버스타고 여의도 샛강 공원을 갔다. 집에 갈 즈음, 가는 길을 정확히 몰랐던거 같다. 샛강 위에 차도로 올라가다가 아이 발이 진흙에 빠져서 운동화가 질퍽거렸다. 나는 아이를 업었고 꽤나 무거웠으므로 떨어지지 않게 엄마 목을 꽉 잡으라고 이야기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미 목을 꽉 잡으면서 "이렇게?" 하고 묻는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따뜻하고 좋던지. 그 목소리와 엎혔던 느낌이 아직 생생하고 그 등이 지금 이순간의 내 등 같다. 

사실은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키웠다. 우리는 대부분의 날들을 둘이 함께 했다. 대부분을 둘이서만 함께 했다. 그래서 애틋하고 좋기도 하고, 아직 설움이 마음에 가득하기도 하다. 

posted by 별진 2018. 7. 18.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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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애슬론 체형. 우리는 초가을 일요일의 소박한 레이스를 끝내고 각자의 집으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리고 다음 레이스를 대비해 각자의 장소에서 이제까지와 같이 묵묵히 연습을 계속해간다. 그런 인생을 옆에서 바라보면 별다른 의미도 없는 더 없이 무익한 것으로서, 또는 매우 효율이 좋지 않은 것으로서 비쳐진다고 해도, 또한 어쩔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하루키의 말이 편안하다. 작가의 삶의 태도인 것이다. 효율이 없어도 얻는 것이 없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쩔수 없다는 것은 단념이나 체념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그저 사는 것. 그 안에서 노력이란 것을 해보는 것. 거기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얻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괜찮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