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posted by 별진 2019. 3. 13. 19:29

#우리는자란다


자려고 눕길래 하고싶은 말이 있어 따라 들어갔다. 
"공부하는 이유"


어제 남편과 공부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사명감'이란 단어에 깨장에서의 벅찬 감동이 떠올랐다. 나에게 다른 삶을 살게 해준 고향이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가, 단지 먹고살기 위함이 아닌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함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었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여러가지 방법을 생각해보자'로 시작했으나 발전으로 인한 빈부격차, 고령화, 저출산부터 무기발명으로 인한 대학살, 히틀러와 2차 세계대전까지 이어졌다. 단어만 나열해놓으면 그럴싸한 토론를 한 것 같지만 지극히 초딩다운 발상에서 출발한다. 초딩은 오늘 중1 되었다.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는 아이 말대로 플라스틱 먹는 미생물 개발이나 썩는 플라스틱 개발처럼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고, 분리수거 캠페인의 시민운동이나 아예 플라스틱을 규제하는 제도로써 접근할 수도 있다. 문제들을 해결하고 좀 더 나은 더불어 잘사는 세상을 위한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고 이를 위해 우리는 공부한다... 라고 우겨보았다. 이미 세상에 쓴맛을 여러모로 겪었는지 사람들은 발전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공부해서 발전하는것이 유해하다는 것이 아이의 주장이다. 나는 다시, 세상에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아직 살만한 세상인건 분명 다함께 잘살기 위해 애쓰는 좋은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 라고 우겼다.


다행히 여기까지 하고 좀 자자고 짜능내줘서 생각이 많구나, 기특하다는 둥, 엄마도 너만할 때 조선시대가 낫다며 너처럼 생각했던거 같다는 둥 토닥이고 나왔다.


이야기한다는 것이 가르치려했으니 이미 시작부터 대화라고 할만한 것이 아니었던걸까. 그저 먹고 살기 위함보다 다른 무언가가 가슴속에 있길 바란다. 어쩌면 자식 공부 잘해서 잘 먹고 잘 살았으면 하는 지극히 저만 생각하는 어미욕심일 것이다. 또 잘 먹고 잘 살되, 이것이 네 마음에 조금이라도 짐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더 커다란 욕심도 있다. 그저 네 한 몸, 사람들속에서 소박하게 살만하고 작은 것에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성질내지 않고 차분히 듣고 토닥여주기까지 한 나를 매우 매우 매우 칭찬한다. 우리는 잘 가고 있다.


#칭찬해칭찬해
#저는겨우텀블러씁니다
#플라스틱쓰레기는_우주적문제에요 
#미세먼지는_태양계문제일까요


ID
posted by 별진 2019. 2. 28. 23:33

#우리는자란다


#1
겨울방학에 가고싶어하던 일본 먹방여행을 엄마랑 둘이 다녀왔다. 아이가 찾은 맛집을 구글맵에 표시해두어서 엄마는 먹을 걱정은 없었다. 마지막날 나라공원에서 공항버스탈때까지 아이는 계속 사슴안고 다니고 나는 옆에서 사진만 찍었다. 예전같으면 짜증 100만배, 성질내기 970만번이었을텐데, '얘는 정말 동물을 사랑하는구나'하고 지켜볼수 있는게 감사했다.


일본은 관광객이 정말 많았다. 여행다니기 좋게 잘 되어있고, 자기들 고유의 문화를 곳곳에 잘 살려놓아 특색있고 보기 좋았다. 우리나라도 이정도 관광객이 오면 먹고 살만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목포 옛건물 사는데 무슨 투기를 생각하겠나, 이렇게 멋지게 살리면 좋겠다, 사명감이나 애정이란 이런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예전에 1박2일 목포여행을 했는데, 그때 목포근대역사관이 참 좋았다. 입구에서 해설가 선생님이 친절하고 간략하게 목포의 역사를 설명해주셔서 더 인상깊었다. '미스터선샤인'에 나올법한 건물이어서 일제강점기 소설책을 보면 이 건물이 생각난다. 초등저학년 아이도 신기해하며 다녔다. 구 시가지 옛건물에는 일제만행을 보여주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차마 아이와 함께 보기 어려운 사진들이 많았다. 전쟁의 참상을, 나는 이 사진들로 인해 현실적으로 상상할수 있게 되었다. 구시가지는 한적했지만 현대건축물과는 다른 옛건물들의 무게감과 세월의 흔적이 아름다웠다. 인천 차이나타운보다 거리는 짧지만 더 '깊은'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오사카성을 구경할때 아이는 손가락엿을 날린다며 불끈쥐고 다녀서 말리느라 애썼다. 우리는 그들 땅에 와있고 그들의 잘잘못을 떠나 예의를 지키자 여러번 설명해야 했다. 여튼 지방도시까지 지하철 잘 되어있고 구 시가지가 살아있으며 새건물들도 관광객이 볼만하니 과연 선진국이구나 한다.


욕심많은 엄마 봐주느라 고생한 아들이 고마운 여행이었다. 너 많이 컸구나. 그런데 이런 배려는 엄마한테만 하고 너를 먼저 생각하렴. ㅋ


#2
겨울방학 어느 날, 그냥 바다가 보고 싶어서 인천으로 달렸다. 둘이서 노을보고 칼국수 한그릇 먹고 왔다. 돌아오는 길에 먼 바다보다 파도치고 바람부는 바다가 더 낫다는데 공감했다.


#3
명절풍경.
일년에 며칠 못보지만 두살터울 사촌동생이랑 내복바람으로 신나게 노는구나. 어미 잔소리는 끝이 없지만 너는 더 못놀아 안달인게 다행이다.


#4
지금 여기.
커피한잔 할 수 있어서 참 좋고,
지인의 따뜻한 문자에 감사하고,
이렇게 방학을 기록할 수 있어 여유롭다.


#겨울방학
#일본과목포 #인천앞바다노을 
#명절에엄마는허리가아프다 #그래도너는놀아라
#지금도자란다


#커피한잔의여유


  #명절에엄마는허리가아프다 #그래도너는놀아라


#하루카스빌딩야경


#인천앞바다노을 


ID
posted by 별진 2019. 1. 8. 23:52

#1
아들 생일이다. 
어제 저녁엔 먹고싶다는 고기집가서 줄서서 기다린 끝에 셋이 고기 6인분+된장에 밥한공기씩 뚝딱하고, 돌아오는 길에 케잌사서 초를 밝혔다. 불 다끄고 초하나만 켜도 집안은 환해진다. 내 마음에 초하나만 있음 추운 겨울이 따뜻해짐을 자꾸 알게된다.

오늘 아침은 미역국에 좋아하는 잡채를 함께 해먹고, 아들 소원하는 부루마블을 셋이서 했다. 언제나처럼 아빠 완승! 신기하게 같은 전략으로 하는데 늘 남편이 일등이다. 게임이지만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남편이 이겨서 다행이다.

나는 저녁밥을 하고 아빠와 아들은 줄넘기하러 갔다. 매일 500개 하기 미션. 엄마 맘이 가닿았는지 요즘은 엄마가 주는 미션을 투덜대지 않고 해준다. 매일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한다는 의미를 알길 바란다. 입만 움직이는 나보다 아이가 백만배 낫다.


#2
얼마전 아이와 누워 한 이야기.
해외로 입양되는 아이를 데려다주면 비행기가 반값이라며 눈을 반짝인다. 엄마는 비행기값이 부담되긴 하지만 그렇게 해외여행을 가고 싶진 않다고 이야기해줬다. 입양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원래 없으면 가장 좋은 일이고, 아이를 그렇게 보내는게 맘이 불편할텐데 돈 좀 아끼려고 맘 불편한 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 엄마는 신념같은게 생긴거구나~" 
한다. 아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명치끝이 아린다. 신념까지는 아니지만 지킬 수 있는 작은 가치는 지키며 살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걸 자꾸 알게 된다. 우리 주변에는 생각보다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다.


엄마가 하는 생각들이 아이에게 짐이 될까 두려울 때가 있다. 가볍게 살아도 되는 삶이다. 아무때고 무거우면 그냥 내려놓을 수 있길 간절히 기원한다.


#3
크리스마스에 간 9BLOCK.
9BLOCK 커피는 비싸지만 맛있었고 경치도 좋았다. 내부도 단정하고 멋진 까페였는데 봄, 여름에 오면 더 좋을것 같다. 날이 날이니만큼 연인들이 많아서인지 혹은 내 존재가 뜨내기일 수 밖에 없는 장소여서인지 편안하진 않았다. 빨리 가자고 옆에서 보챈다. 오가는 길에 셋이 좁은 차에 낑겨 탄 것이 추억이 된 하루다.


#4
부암동 라까페.
깊은 초록빛의 까페. 심신이 매우 피로한 상태였는데 이곳의 고요한 기운에 나도 단정해진다. 자꾸만 초대해주는 따뜻한 친구와 함께여서 좋은 날. 담엔 내가 먼저 초대해야지.


#부암동라까페 #박노해갤러리
#9BLOCK #경치가좋아요
#고진감래말고_그냥하기
#무거우면내려놓기
#오늘도_유머는_실패

이미지: 하늘, 실외, 물 자연
이미지: 사람들이 서 있음 실내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이미지: 실외


ID
posted by 별진 2019. 1. 8. 23:50

#1
종종 감정 과잉상태를 겪는다. 
어제는 학교에서, 오늘은 법당에서 그랬다. 사이버상에서도 자주 그런다.

예전에는 진심을 다했을때 그게 돌아오지 않으면 맘이 상했다. 지금은 돌아오건 말건 그냥 진심으로 한다. 가끔 어리석게 보일 때가 있고 감정에 치우친게 아닐까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게 나다. 딴 맘이 있을땐 잘 돌아오지 않더니, 그저 나에게 충실한 것이 나에게 돌아올 때가 있다.


'진심'이란 단어에 '다했다'는 표현을 쓰는건 '진심'은 조금만 쓸수 없어서 소진해서 전부 '다'할 수 밖에 없어서가 아닐까? 생각만으로도 맘 따뜻한 인연도 자꾸 생긴다. 함께할 수 있고, 잘 쓰일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연말이다. 나중에 갱년기가 오면 우울보다 감동과잉을 겪지 않을까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2
지난 주말 아들이 같이 가준 동작 구름까페. 
커피 이천원. 맥주 와인 안주 다양하게 있음. 군고구마는 있지만 사발면은 못봤음. 루프탑 전망 좋음. 다양한 연령의 문학동네 책 다량 구비됨. 담번엔 노을까페로 갈 예정. 한강야경 즐기기.


#3
일상이 소확행.
집에서 따끈한 저녁밥 먹으면서 맛있다, 행복하다 한다. 꼬박꼬박 집에 와 가방던지고 똥싸러 가는 아이가 매일 반갑다. 불끄고 이불덮고 누워있어도 참 좋다.


#동작구름까페 
#포동한손등 #부끄러서손가락은하나만 #포동할때맘껏안아주기

이미지: 밤, 다리, 실외 물
이미지: 실내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ID
posted by 별진 2018. 12. 8. 01:18


나는 버리는것을 잘 못한다. 
물건도 마음도 버리지 못해 집착이 많다. 집안 정리를 하면서 몇가지 물건을 '중고나라' 네이버 까페에서 무료나눔을 했었다. 10년도 더 된 믹서기, 아이 어릴때 쓰던 블럭 장난감, 6년쯤 된 보온압력밥솥, 최근에는 프린터가 고장나 못쓰게 된 무한리필 잉크를 나누었다. 기능엔 이상이 없어서 버리긴 아까웠지만 바꾸고 싶은 물건들, 오래 되었지만 정말 아이가 잘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자취생에겐 유용할 듯한 보온압력밥솥, 버리면 환경오염이지만 나누면 쓸모있을 잉크였다. 
 나는 대학3학년부터 자취를 했다. 원래 성질이 그러했겠지만, 자취하면서 버리고 사는걸 더 잘 못했던 것 같다. 자취생에겐 믹서기도, 보온압력밥솥도 새로 사면 사치일 것만 같은 마음을 알 수 있다. 젊은 여학생이 지하철을 타고 캐리어를 끌고 밥솥을 가지러 왔고, 애기 엄마가 그 큰 장난감통을 혼자 들고 가셨다. 그 외에도 몇가지가 있었는데 모두 우유나 쥬스, 과자 등등 소소한 간식거리를 까만 봉투에 주고 가셨다. 택배로 보낸 물건들에 대해서는 참 고맙다며 꼭 문자인사가 왔다. 받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고, 그저 버리지 못하는 내 성질대로 나누었으나, 그들이 건네준 까만 봉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무주상보시'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로 돌아온다'
주었으나 준 것은 없고, 오히려 받은 것만 남았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하루.

#부암동환기미술관 #아직도예쁜단풍이 #앙상해도운치있는담쟁이 #차갑지만따뜻한돌계단


ID
posted by 별진 2018. 11. 2. 22:52

버거킹에 갔다. 

햄버거세트 3개를 주문해야했는데, 신상품이 출시됐고 제품의 세트구성이 여러개 였으며 자동 주문 터치스크린에는 상품 사진만 있고 설명이 없었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다 기계한테 물어볼 수 없어서 망설이다 주문을 못하고 옆으로 나왔다. 편리하다는 자동 주문기계는 매우 불친절해서 신상품이 어떤 제품인지, 세트메뉴 구성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설명해주지 않았고 나는 마치 석기시대 사람마냥 당황했다. 카운터 직원들은 기계가 쏟아내는 명령을 처리하기 바빠서 붙잡고 물어보기 어려웠다. 이 터치스크린은 세대나 있었는데 사람이 직접 주문 받는것보다 느려서 손님들이 줄을 길게 서있다. 게다가 그 중 한대는 고장나서 두대만 사용할 수 있었다. 사람에게 주문할 때는 필요한 것을 말하면 됐는데, 터치스크린으로 주문하려니 메뉴의 카테고리와 반복적으로 물어보는 사이드메뉴 등을 여러번 눌러줘야 했다.


가끔 맥도날드에서도 똑같은 기계로 커피 한잔을 주문하는데 꽤나 손이 많이가고 오래걸린다. 기계앞에서 결제는 카드로만 가능하고 현금으로 하려면 카운터에서 해야한다. 그런데 막상 카운터로 가면 음식을 만드느라 바빠서 주문받는 직원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편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불편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게 4차산업혁명의 현실인가.


점주나 업체가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임엔 틀림없지만, 일자리가 줄고 손님에게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만약 고급 식당이라면 어땠을까? 저렴한 매장은 점점 기계화되는 반면, 비싼 곳에서는 기계가 손님을 상대하지 않을 듯하다. 빈부격차는 점점 심해질거고 사람을 만나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격차도 더욱 벌어질것 같다. 일자리는 기계가 차지하고, 소득격차는 더 벌어지며, 빈곤한 나는 사람이 아닌 기계가 상대하게 될거다. 멀리 있는 줄 알았던 로봇세와 기본소득 보장의 필요성을 일상에서 체감하는 순간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극히 소수의 엘리트에게 부가 집중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과 인공지능에게 지배당할 것이라 예측한 유투브영상도 생각난다.


오늘 저녁을 이렇게 산 버거킹 햄버거로 대신했는데, 그 이유도 기계에 있다. 집에 있는 샤오미 로봇 청소기가 고장난 프린터를 건드려 잉크가 샜고 거실 마루가 검은 잉크로 난장판이 되었다. 성실한 청소기는 내가 없는 사이, 바퀴에 잉크를 묻힌 채로 온 집안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잉크를 닦다가 진이 빠졌고 아세톤을 사러나온 김에 저녁도 해결하러 간거였다.


로봇 청소기는 내 일자리를 뺏진 않았지만, 사람과 달리 본연의 업무인 먼지청소에만 충실해서 쏟아진 잉크조차 닦을 줄 모른다. 버거킹 터치 스크린은 빠르지도 못하고, 필요한 것을 물어볼 수도 없으며, 고장도 잘난다. 알파고 따위의 인공지능도 아니고 이렇게나 멍청한 기계때문에 간단한 햄버거주문에도 당황하고, 일자리를 빼앗긴다니 마음이 불편하다. 혹시 어디엔가 있을지 모르는 '울트론'의 음모는 아닐까? '러다이트 운동'을 해야하는 건 아닐까?


#4차산업혁명 #울트론의음모 #멍청한로봇 #지금당장_로봇세 #러다이트운동 #기계보다사람

자동 대체 텍스트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자동 대체 텍스트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ID
posted by 별진 2018. 10. 6. 01:44

페북을 보다가 어느 젊은 아빠가 아이들 어린 시절에 6살 아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고 지하철을 타고 장난감 가게까지 다녀온 이야기를 보았다. 인천 지하철에서 자고 있는 아이가 탑승한 채로 유모차를 들고 이동한 이야기, 큰 아이에게 아빠가 산 선물이 아니라 산타할아버지가 준 선물이어야만 했으므로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추운 밖에서 서성인 일 등이 적혀 있다. 

문득 지난날 아이가 누워있는 유모차를 안고 신림동 4층 빌라를 오르내린 기억이 난다. 아이가 누워있거나, 아니면 아이따로 유모차 따로 들고 날랐었다. 장본 날은 장본 물건도 따로였다. 집에 제일 먼저 올려다 놓은 아이가 울까봐 그 높은 계단을 헐레벌떡 뛰어다닌 기억이 있다. 정말 다리가 후들거리고 땀이 뻘뻘 났다. 아이 장난감을 사러 남편이 고군분투한 기억이 나는 없다. 이것이 아이에 대한 나의 과잉사랑 때문일까, 남편의 과잉 무관심 때문일까. 아직도 지난날의 설움이 나는 북받힐때가 있다. 남편의 고된 돈벌이 따위는 내 설움 저 아래에 있다. 

아이가 부산에서 올라온 며칠 후, 장을 보러 아이를 데리고 이마트를 갔었다. 장을 오래봐서 우리는 배가 고팠고, 적당히 때울줄 몰랐던 나는 장본 것들 중에 빵을 하나 뜯어서 아이 손에 쥐어주었다. 배고픈 나머지 나도 한입 베어먹었더니 아이가 화를 내며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있다. 3살때다. 겨우 작은 장바구니 하나되는 짐을 들고 택시를 잡아 집에 왔다. 다시 4층까지 아이를 달래고 안고 짐을 들고 올라갔다. 이미 깜깜한 저녁이었다. 

5살인가 6살때는 둘이 심심해서 버스타고 여의도 샛강 공원을 갔다. 집에 갈 즈음, 가는 길을 정확히 몰랐던거 같다. 샛강 위에 차도로 올라가다가 아이 발이 진흙에 빠져서 운동화가 질퍽거렸다. 나는 아이를 업었고 꽤나 무거웠으므로 떨어지지 않게 엄마 목을 꽉 잡으라고 이야기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미 목을 꽉 잡으면서 "이렇게?" 하고 묻는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따뜻하고 좋던지. 그 목소리와 엎혔던 느낌이 아직 생생하고 그 등이 지금 이순간의 내 등 같다. 

사실은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키웠다. 우리는 대부분의 날들을 둘이 함께 했다. 대부분을 둘이서만 함께 했다. 그래서 애틋하고 좋기도 하고, 아직 설움이 마음에 가득하기도 하다. 

ID
posted by 별진 2018. 6. 22. 21:39

 

#오늘도_소확행

지하철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다. 위아래 양복을 맞춰 입고, 중절모를 쓰신 할아버지가 내 옆에 앉으시더니 부채질을 하신다. "글을 읽고 있으니 내가 부채 부쳐주는 거야" 하신다. 괜찮다고 하니 그냥 부채질 하면서 같이 바람 보내는 거라 하신다. 대나무로 된 부채살을 펼쳐 보이시면서 씌여있는 글귀를 읽어주신다. 

"一(일체유심조)"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렸다는 뜻이란다. 자신과 동갑인 조카가 고향에 있는 대나무로 부채살을 만들고 글도 써서 준 거라 하신다. 내리실 때는 본인 나이가 여든여덟인데 중매해달라고 웃으시며 내리신다. 

예전에는 낯선 사람, 낯선 상황이 싫었는데 요즘은 싫지 않다. 마음이 좋다. 그야말로 "일체유심조"다. 
ID
posted by 별진 2018. 3. 25. 18:43
일요일 오후에 아이반 녹색 엄마들을 만났다. 모두 새로운 얼굴들이다. 주말이라 그런지 모두들 수수한 차림이다. 옷차림도 그렇지만 주말 오후 만남 자체가 신선하다. 수수한 첫인상에 기분이 좋다. 학원 따위와는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어색해지면 누군가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집에 돌아와서도 기분이 썩 좋아서 주말 오후에 나가는 남편에게 웃어보인다. 여전히 게임을 하고 있는 아이에게도 큰소리를 내지 않는다. 괜시리 움츠렸던 마음이 펼쳐진다. 별거 아니라도 수다가 필요한가보다. 하루에 일만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했던가. 나에게도 해당한다는 것을 종종 알게된다. 기분이 좋으니 몸을 바삐 움직이게 되고, 설겆이, 화장실청소, 빨래를 한꺼번에 해치운다. 할일을 해놓으니 또 좋다. 망설이던 내일의 일을 해보자 다짐한다. 그래, 미리 쫄 필요 없다. 
ID
posted by 별진 2018. 2. 6. 16:45
나는 3년 전에 이사를 했다. 6년전에는 직장을 그만두었고, 13년 전에는 결혼을 했다. 
결혼으로 내가 속해있던 여러 공동체를 떠났다. 가족을 떠났고 자취방에서 신혼집으로 이사를 했다. 어릴 때부터 살던 동네를 떠나서 내 생에 가장 먼 곳으로 주거지를 옮겼다. 자연스레 친구들과도 멀어졌다. 회사를 그만두고는 소속감을 잃었다. 

이사를 하기 전에는 동네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골목을 오가며 일상을 공유했다. 굳이 모임이라 할 것도 없이 자연스레 모였고 서로 연락하며 지냈다. 우리는 목적없이 만나서 한참 수다를 떨고 나서야 헤어졌다. 크고 작은 갈등도 있었고 관계에 대한 고민도 깊었다. 

주택가에 살다가 아파트 촌으로 이사를 했다. 이곳은 시장도 골목도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지만 각자의 영역은 훨씬 명확하다. 성능좋은 방화문, 방화벽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애써 나서지 않으면 주변을 알기 어렵다. 아이는 학교에 속해있고 남편은 직장에 있었지만 나는 집 밖에 없었다. 우리는  밥을 먹고 나면 각자의 관심사에 몰두한다. 운명 공동체이지만 서로 목표가 다르고 공감대도 다르다. 

나는 다른 공동체를 찾아 나섰다. 소극적인 성격인데 꽤나 용감하게 그리고 열심히 나섰다. 혼자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에 오게 되었고, 지역모임도 하게 되었다. 혼자 '정토 불교대학'에 등록했고 지역 법당에 매주 다니기 시작했다. 누군가 권하거나 함께 하지 않는데, 홀로 참여한다는 것이 나에겐 처음 있는 일들이었다. 드디어는 독서모임도 하게 되었다. 

 지금 내가 속한 모임들은 한달에 두번 혹은 매주 만나는데, 꽤나 자주 만난다. 만나서 정해놓은 시간을 함께하고 나면 각자의 일상으로 흩어진다. 서로에 대해서 개인적인 궁금증은 자제하고 목적에 맞는 이야기들을 나누려 애쓴다.  우리는 끈적한 관계는 피하고 서로를 드러내지 않은 채 예의를 지킨다. 간결하고 편리하지만 어쩐지 쓸쓸하다.

가끔 나는 일상을 페친들과 공유한다. 가장 편리한 공동체다. 나의 일상에 비난하거나 조언하지 않고 그냥 '좋아요'를 눌러준다. 페친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느슨한 공동체. 불편한 거리감이 있지만 그 불편함이 편안한 사이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이제는 그 편안함이 쓸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