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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6.03 산책 - 20150601새벽
posted by 별진 2015. 6. 3. 23:01

 아들아

 오늘도 엄마는 밤 산책을 나갔었단다. 이렇게 늦게 나간 날에는 나무가 많아 시원한 우리동 뒷쪽 길은 무서워서 못간단다. 그게 참 아쉬워. 거기는 나무랑 풀 덕분에 시원한 산공기, 나무공기, 바람이 느껴지는 곳이거든.

 산책하다 집에 올 즈음에 하늘을 올려다 보았는데 이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별들이 정말 많이 반짝이더라. 깜짝 놀라고 신기하고... 좋았단다.

 게다가 이 고층 아파트 위로 보이는 달은 너무 밝아서 가로등인줄 알았지. 이렇게 쓰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꼭 달에 갔다온 기분이구나.

 엄마는 너랑 산책하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고, 네가 모처럼 활짝 웃는 그 환한 웃음을,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너는 이 소박한 엄마의 소망을 참 들어주지 않는구나.

 그리고 오늘은 다른 쪽으로 가보았더니 처음 보는 분수대와 나무들이 있더라. 의자도 많고 공기도 시원해서 잠시 앉았다가 왔단다.

 또, 며칠전부터 너에게 보여주려고 닫지 않은 인터넷 창이 있는데, 기사에 뜬 외국의 어느 축구 해설가의 노트란다. 나이가 좀 있는 해설가였는데 어찌나 노트를 꼼꼼히 보기좋게 잘 적었는지 대단하더라. 이걸 너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한 5일째 창을 열어놓고 있단다.

 참, 산책할 때 애기하고 싶은게 한가지 더 있는데, 윗몸 일으키기 하는 운동기구 말야. 그걸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았단다. 발을 더 아래에 걸어야 해.

 

 아들아

 엄마는 조금은 외롭고 쓸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구나. 우리 아들은 외롭지 않게 해주고 싶단다. 네가 스스로 네 인생을 가꾸어 나갈 수 있을 즈음에는 엄마보다는 좀 더 용감하고 지혜롭게 사람들과 소통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엄마가 너에게 불편하지 않고 친구처럼 다정하고 따뜻한 엄마가 되고 싶은데, 정말 그러고 싶은데 잘 안되는 구나.

 작게라도 이 편지로라도 너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하지 못한 이야기, 엄마의 마음을 보여주고 싶다.

 

 사랑해 우리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