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31. 15:11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마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튀기지 마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황인숙 [강] 전문 -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살같은 단어들이다. 외롭고 괴롭고 미치고 침 튀기고 게다가 나한테 말하지 말고 눈도 마주치지 말자한다. 돌려서 말하지 못하고 울컥하는 주먹질같은 시라서 좋다. 화려한 형용사들로 꾸며진 삶은 겉보기만 반질할 뿐 그 속을 알 수 없다. 솔직하고 직접적인 모양새를 갖는 삶은 겉보기는 보잘것 없어도 겉과 속이 같다. 마음에 콱 와닿고 속이 후련한 글이다. 나도 너처럼 복장 터지니까 나한테 침도 튀기지 말고 눈도 마주치지 말자. 강에 가서 내지르는 지은이의 모습이, 아니 내 모습이 그려진다.
찾아보니 2009년에 이 시를 읽고 좋아서 남긴 글이 있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마음이 정갈해져서 비통, 비참 등의 단어들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지금의 내가 더 좋다.
-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에서 황인숙의 [강]을 읽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