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8.01.31 [시] 강 - 황인숙
  2. 2018.01.12 당일치기 강릉여행
posted by 별진 2018. 1. 31. 15:11


당신이 얼마나 외로운지, 얼마나 괴로운지,

미쳐버리고 싶은지 미쳐지지 않는지

나한테 토로하지 마라

심장의 벌레에 대해 옷장의 나방에 대해

찬장의 거미줄에 대해 터지는 복장에 대해 

나한테 침도 튀기지 마라

인생의 어깃장에 대해 저미는 애간장에 대해

빠개질 것 같은 머리에 대해 치사함에 대해

웃겼고, 웃기고, 웃길 몰골에 대해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황인숙 [강] 전문 -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살같은 단어들이다. 외롭고 괴롭고 미치고 침 튀기고 게다가 나한테 말하지 말고 눈도 마주치지 말자한다. 돌려서 말하지 못하고 울컥하는 주먹질같은 시라서 좋다. 화려한 형용사들로 꾸며진 삶은 겉보기만 반질할 뿐 그 속을 알 수 없다. 솔직하고 직접적인 모양새를 갖는 삶은 겉보기는 보잘것 없어도 겉과 속이 같다. 마음에 콱 와닿고 속이 후련한 글이다. 나도 너처럼 복장 터지니까 나한테 침도 튀기지 말고 눈도 마주치지 말자. 강에 가서 내지르는 지은이의 모습이, 아니 내 모습이 그려진다. 

찾아보니 2009년에 이 시를 읽고 좋아서 남긴 글이 있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마음이 정갈해져서 비통, 비참 등의 단어들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지금의 내가 더 좋다. 

-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에서 황인숙의 [강]을 읽고 - 


etc
posted by 별진 2018. 1. 12. 17:29
지난 주말 강릉에 다시 갔다. 작년에 잠시 들렀던 것이 좋았어서 경강선 개통했다기에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오죽헌에 갔는데 마침 무료 해설시간이랑 맞아서 해설자를 따라다녔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 선생에 대한 이야기도 새롭고 재미있었지만, 이 해설자 분이 참 마음에 남는다. 60대로 보이셨는데 짧은 커트머리와 평범한 청바지 차림에도 말투와 매무새가 기품이 있으셨다. 소품에도 해설을 위한 작은 정성이 있었고, 이야기에 강약이 있고 강릉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실외라 산만할 법 하지만 즐거운 미소로 이야기하시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집중할 수 밖에 없다. 이야기가 재밌었는지 시립박물관에도 꼭 가야한다며 초딩이 먼저 나선다. 

때때로 나이듦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많이 가지지 않아도 기품있고 쓰일 데가 있다는 것이 아름답다. 오죽헌 해설자의 여유로운 미소가 떠오른다.


하얀 눈 쌓인 대관령을 기대하고 대관령 양떼목장에 갔는데 날이 따뜻해서 이미 다 녹아버렸다. 그래도 왔으니 길따라 올라갔는데, 제일 높은 곳에서 전망을 보니 사람들이 이래서 산을 오르는구나 한다.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강원도,  나무가지 사이로 산 바닥에 하얗게 쌓인 눈, 파란 하늘이 보인다. 한바퀴 둘러보는데 40분이면 된다 했지만 초딩과 다니려니 깨알 이벤트가 많아 두 시간은 걸린듯 하다. 



'오월에 초당' 멸치국수는 예전에 너무 맛있게 먹어서인지 그 맛과는 조금 달랐다. 그래도 맛도 양도 좋았다. '52블럭' 빵은 담백하고 쫀득하니 딱 내 입맛이다. 이른 시간에 빵을 발효하거나 멸치육수 내느라 힘들었겠다, 정성이다 한다. 강릉시장에 들러 길게 줄서서 호떡도 먹고 고로케도 먹었다. 호떡은 왜 줄서는지 모르겠다는게 함정. 한 호떡집은 줄이 안줄어 봤더니 기름이 적어 호떡은 안익고, 퍼포먼스인지 호떡 뒤집개끼리 부딪치는 소리만 요란하다. 호떡집 사장님들은 표정도 굳어있다. 서울 호떡이 어디서든 이보다 맛나다. 
 
강릉까지 가서 바다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기차시간이 다되어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안목해변을 지나서 매우 아쉬웠다. 바다인지 하늘인지 시커먼 사이로 하얀 파도가 보였다. 

아침 7시 반 기차로 출발해서 저녁 7시 반 기차로 돌아왔다. 오는 기차에서는 실신상태. 당일치기지만 몸은 2박 3일보다 고되다. 

강릉 당일치기는 비추! 
일박했으면 안목해변에서 여유롭게 커피한잔 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