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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진 2018. 12. 8. 01:18


나는 버리는것을 잘 못한다. 
물건도 마음도 버리지 못해 집착이 많다. 집안 정리를 하면서 몇가지 물건을 '중고나라' 네이버 까페에서 무료나눔을 했었다. 10년도 더 된 믹서기, 아이 어릴때 쓰던 블럭 장난감, 6년쯤 된 보온압력밥솥, 최근에는 프린터가 고장나 못쓰게 된 무한리필 잉크를 나누었다. 기능엔 이상이 없어서 버리긴 아까웠지만 바꾸고 싶은 물건들, 오래 되었지만 정말 아이가 잘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자취생에겐 유용할 듯한 보온압력밥솥, 버리면 환경오염이지만 나누면 쓸모있을 잉크였다. 
 나는 대학3학년부터 자취를 했다. 원래 성질이 그러했겠지만, 자취하면서 버리고 사는걸 더 잘 못했던 것 같다. 자취생에겐 믹서기도, 보온압력밥솥도 새로 사면 사치일 것만 같은 마음을 알 수 있다. 젊은 여학생이 지하철을 타고 캐리어를 끌고 밥솥을 가지러 왔고, 애기 엄마가 그 큰 장난감통을 혼자 들고 가셨다. 그 외에도 몇가지가 있었는데 모두 우유나 쥬스, 과자 등등 소소한 간식거리를 까만 봉투에 주고 가셨다. 택배로 보낸 물건들에 대해서는 참 고맙다며 꼭 문자인사가 왔다. 받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고, 그저 버리지 못하는 내 성질대로 나누었으나, 그들이 건네준 까만 봉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무주상보시'
'모든 것은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로 돌아온다'
주었으나 준 것은 없고, 오히려 받은 것만 남았다. 

오늘도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하루.

#부암동환기미술관 #아직도예쁜단풍이 #앙상해도운치있는담쟁이 #차갑지만따뜻한돌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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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진 2018. 11. 2. 22:52

버거킹에 갔다. 

햄버거세트 3개를 주문해야했는데, 신상품이 출시됐고 제품의 세트구성이 여러개 였으며 자동 주문 터치스크린에는 상품 사진만 있고 설명이 없었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다 기계한테 물어볼 수 없어서 망설이다 주문을 못하고 옆으로 나왔다. 편리하다는 자동 주문기계는 매우 불친절해서 신상품이 어떤 제품인지, 세트메뉴 구성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설명해주지 않았고 나는 마치 석기시대 사람마냥 당황했다. 카운터 직원들은 기계가 쏟아내는 명령을 처리하기 바빠서 붙잡고 물어보기 어려웠다. 이 터치스크린은 세대나 있었는데 사람이 직접 주문 받는것보다 느려서 손님들이 줄을 길게 서있다. 게다가 그 중 한대는 고장나서 두대만 사용할 수 있었다. 사람에게 주문할 때는 필요한 것을 말하면 됐는데, 터치스크린으로 주문하려니 메뉴의 카테고리와 반복적으로 물어보는 사이드메뉴 등을 여러번 눌러줘야 했다.


가끔 맥도날드에서도 똑같은 기계로 커피 한잔을 주문하는데 꽤나 손이 많이가고 오래걸린다. 기계앞에서 결제는 카드로만 가능하고 현금으로 하려면 카운터에서 해야한다. 그런데 막상 카운터로 가면 음식을 만드느라 바빠서 주문받는 직원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편리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불편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게 4차산업혁명의 현실인가.


점주나 업체가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임엔 틀림없지만, 일자리가 줄고 손님에게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만약 고급 식당이라면 어땠을까? 저렴한 매장은 점점 기계화되는 반면, 비싼 곳에서는 기계가 손님을 상대하지 않을 듯하다. 빈부격차는 점점 심해질거고 사람을 만나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격차도 더욱 벌어질것 같다. 일자리는 기계가 차지하고, 소득격차는 더 벌어지며, 빈곤한 나는 사람이 아닌 기계가 상대하게 될거다. 멀리 있는 줄 알았던 로봇세와 기본소득 보장의 필요성을 일상에서 체감하는 순간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극히 소수의 엘리트에게 부가 집중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들과 인공지능에게 지배당할 것이라 예측한 유투브영상도 생각난다.


오늘 저녁을 이렇게 산 버거킹 햄버거로 대신했는데, 그 이유도 기계에 있다. 집에 있는 샤오미 로봇 청소기가 고장난 프린터를 건드려 잉크가 샜고 거실 마루가 검은 잉크로 난장판이 되었다. 성실한 청소기는 내가 없는 사이, 바퀴에 잉크를 묻힌 채로 온 집안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잉크를 닦다가 진이 빠졌고 아세톤을 사러나온 김에 저녁도 해결하러 간거였다.


로봇 청소기는 내 일자리를 뺏진 않았지만, 사람과 달리 본연의 업무인 먼지청소에만 충실해서 쏟아진 잉크조차 닦을 줄 모른다. 버거킹 터치 스크린은 빠르지도 못하고, 필요한 것을 물어볼 수도 없으며, 고장도 잘난다. 알파고 따위의 인공지능도 아니고 이렇게나 멍청한 기계때문에 간단한 햄버거주문에도 당황하고, 일자리를 빼앗긴다니 마음이 불편하다. 혹시 어디엔가 있을지 모르는 '울트론'의 음모는 아닐까? '러다이트 운동'을 해야하는 건 아닐까?


#4차산업혁명 #울트론의음모 #멍청한로봇 #지금당장_로봇세 #러다이트운동 #기계보다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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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별진 2018. 10. 6. 01:44

페북을 보다가 어느 젊은 아빠가 아이들 어린 시절에 6살 아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고 지하철을 타고 장난감 가게까지 다녀온 이야기를 보았다. 인천 지하철에서 자고 있는 아이가 탑승한 채로 유모차를 들고 이동한 이야기, 큰 아이에게 아빠가 산 선물이 아니라 산타할아버지가 준 선물이어야만 했으므로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추운 밖에서 서성인 일 등이 적혀 있다. 

문득 지난날 아이가 누워있는 유모차를 안고 신림동 4층 빌라를 오르내린 기억이 난다. 아이가 누워있거나, 아니면 아이따로 유모차 따로 들고 날랐었다. 장본 날은 장본 물건도 따로였다. 집에 제일 먼저 올려다 놓은 아이가 울까봐 그 높은 계단을 헐레벌떡 뛰어다닌 기억이 있다. 정말 다리가 후들거리고 땀이 뻘뻘 났다. 아이 장난감을 사러 남편이 고군분투한 기억이 나는 없다. 이것이 아이에 대한 나의 과잉사랑 때문일까, 남편의 과잉 무관심 때문일까. 아직도 지난날의 설움이 나는 북받힐때가 있다. 남편의 고된 돈벌이 따위는 내 설움 저 아래에 있다. 

아이가 부산에서 올라온 며칠 후, 장을 보러 아이를 데리고 이마트를 갔었다. 장을 오래봐서 우리는 배가 고팠고, 적당히 때울줄 몰랐던 나는 장본 것들 중에 빵을 하나 뜯어서 아이 손에 쥐어주었다. 배고픈 나머지 나도 한입 베어먹었더니 아이가 화를 내며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있다. 3살때다. 겨우 작은 장바구니 하나되는 짐을 들고 택시를 잡아 집에 왔다. 다시 4층까지 아이를 달래고 안고 짐을 들고 올라갔다. 이미 깜깜한 저녁이었다. 

5살인가 6살때는 둘이 심심해서 버스타고 여의도 샛강 공원을 갔다. 집에 갈 즈음, 가는 길을 정확히 몰랐던거 같다. 샛강 위에 차도로 올라가다가 아이 발이 진흙에 빠져서 운동화가 질퍽거렸다. 나는 아이를 업었고 꽤나 무거웠으므로 떨어지지 않게 엄마 목을 꽉 잡으라고 이야기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미 목을 꽉 잡으면서 "이렇게?" 하고 묻는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따뜻하고 좋던지. 그 목소리와 엎혔던 느낌이 아직 생생하고 그 등이 지금 이순간의 내 등 같다. 

사실은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키웠다. 우리는 대부분의 날들을 둘이 함께 했다. 대부분을 둘이서만 함께 했다. 그래서 애틋하고 좋기도 하고, 아직 설움이 마음에 가득하기도 하다.